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푸트니크 쇼크 (문단 편집) == 미국 사회의 변화 == * [[NASA]](미항공우주국)의 설립: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되어 이후 무수한 우주개발을 이끌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으로 미국의 스푸트니크 쇼크를 끝낸 장본인이다. * 교육과정의 변화 스푸트니크 쇼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분야는 교육이다. "우리가 왜 소련에게 과학이 뒤쳐졌는가?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분위기가 불길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존 듀이]]가 주장한 경험중심 교육을 교육과정의 기초로 하고 있었다. 경험 속에서 학습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창의력]]과 [[개성]]을 중시하는 [[진보주의]] 교육사상이었다.[* 당시 미국 교육은 현재 기준에서 봐도 진보적이었다. [[김형석(교육자)|김형석]]의 증언에 따르면 [[6.25 전쟁]] 직후 한국 교육계에서 미국 선생님들을 초청해 교육 방법을 전수받았다. [[서울교동초등학교|교동초등학교]] 교장이 미국에선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하냐고 질문하자 미국 선생님들은 통제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번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원래 학창 시절에 말 안 듣는 애였지만 대통령이 될 만큼 훌륭하게 자랐다고 했다. 평생 [[서당]]이나 일제의 [[주입식 교육]]만 받았던 [[김형석(교육자)|김형석]]은 큰 충격을 받았고 스승, 학부모 중심의 교육을 탈피하고 학생 중심의 교육인 새교육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HyofRkz_1zE|#]]]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의 학교 교육과정이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는데 현재 한국의 교육과정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교육과정을 바꾸기 위해 각 대학교 교육학 교수들이 모여서 회의하였는데 얼마 전까지 교육학계의 주류였던 경험주의 계열 교수들이 이 회의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정도로 당시 사회 분위기가 심각했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 정부는 이 결과의 책임을 과학계나 국방부가 아니라 교육계로 돌렸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애들이 원하는 것만 가르치니까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소홀하게 되었다. 소련보다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을 뜯어고쳐야겠다."는 것이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 공부하길 원해서 공부하는 내재적 목표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과학기술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은 교육을 도구로 사용하는 외재적 목표다. 이전 경험중심 교육과정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 따라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7054&cid=40942&categoryId=31723|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만들어 실시하게 되었다. 과학 중심 교육의 강화를 불러왔다. 일례로 모든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론]]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창조설]]이 점점 교과서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수학교육 현대화 운동(New Mathematics Movements, 새수학 운동)이 일어났는데 미국이 소련에게 밀리게 된 계기가 과학과 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수학을 철저하게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교육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아동의 학습 능력을 고려하지 않아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는 점이다. 미국 교육의 이런 변화는 한국의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정을 만들 때 빈 종이를 펼쳐 놓고 맨땅에서부터 만들 것이 아니므로 당연히 선진국의 교육과정을 보고 만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국의 교육과정을 많이 참고하면서 한국의 교육과정도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되었다. 수학교육 현대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3차 교육과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교육과정이 나오기도 했다. * [[DARPA]] 설립 및 [[인터넷]]의 등장: [[탄도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알파넷]]이 개발되었고 이는 인터넷으로 발전했다. * 스푸트니크 위성의 위치를 추적하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이를 반대로 적용해서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 발명되었다. 그게 바로 지금도 널리 사용 중인 [[GPS]]. 충격을 받은 미국은 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고 이후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돌입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발전 시기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끝내 [[아폴로 계획]]을 성공시킨 미국이 유인 달 착륙 경쟁의 승자가 되었다. 이후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양국은 우주 경쟁은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것임을 천명하고 적대적 관계를 탈피해 [[미소관계]]도 [[라이벌|동기를 부여]]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전환했다. [[분류:1957년/사건사고]][[분류:냉전]][[분류:아이젠하워 행정부]][[분류:흐루쇼프 시대]][[분류:NASA]][[분류:미소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